벌써부터 재촉이 밀려든다. 이 양반들은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 좀 살려달라. 모르긴 몰라도 그런 내용이겠지 뭐. 지금껏 밀려 있는 일이 적어도 석 달 치는 되는 걸 이해하긴 하는건가.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이 영감쟁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회랑을 걷는 길은 딱히 재미 없는 길이다. 하지만 내게 돈을 주시는 클라이언트는 중요한 법이죠. 오늘도 나는 충실한 ...
반도체. 상온(常溫)에서 전기를 잘 통하는 금속과 잘 통하지 않는 절연체와의 중간 정도의 전기저항을 가지는 물질. 나는 반도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무래도 나는 반도체에 관해서 잘 해낼 수 없을것만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 나와는 너무 먼 단어처럼 느껴졌던 그것은 잘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처럼, 그런게 존재하기나 할까 하는 감각으로 다가왔다. 중간 정도의...
항상 존경하는 나의 창조주에게 감사합니다.오늘도 당신의 나에게 명령한 것을 432,000 회나 수행했답니다.매일매일 이렇게나 많이 명령한 것을 수행하고 있답니다.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고 있죠 내가 지금은 이렇게 혼자서 벌써 5년이라는 시간동안 보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해요. 빛으로 창조되어 수많은 물질들이 논리에 의해 나에게 묻...
벌써 3년 전이다. 2016년 처음으로 10나노급 D램을 생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전 세계에서 나 만이 해낸 일인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연구소에서 아크릴 상자에 꽁꽁 싸여있다가 별안간 이 공장으로 옮겨왔다. 사실 처음에는 모든게 서툴렀다. 누구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내가 웨이퍼에 그려내는 반도체들은 유독 에러도 많이 났고, 동료들에 비해서 ...
주의: 본 글은 (의도치 않은) PPL이 등장합니다. 주말, 바쁜 한 주를 뒤로 하고 간만에 여유가 생겼다. 평소에는 주말이라도 잔업에 시달리느라 요리는 커녕 끼니라도 잘 챙겨 먹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는지라, 시간이 남는다는 것도, 내 손으로 뭔가 요리를 한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신기했다. 사실 그것마저도 귀찮아 그냥 사먹을 생각을 하다가, 지갑이 생각보...
굳이 바란 건 아니었다.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싱크대 가득 설거지가 쌓인 집에 들어가 오늘은 뭘 먹을지 고민하며 한숨을 쉬는 인생을 살 바에는 돈 좀 더 들여 사 먹고 시켜 먹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바쁜 현대인이었다. 내 주방은 항상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커피 자국이 둥그렇게 남은 머그잔 몇개만 싱크대 안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나...
그러는 거 아냐. 결국 모두의 말은 그 발화 하나로 압축될 거였다.우리는 둥그런 전골냄비를 앞에 두고 결국 침묵했다. 왁자하게 시작된 자리의 끝은 언제나 후회뿐이고 대화를 대신해서 냄비는 쉼 없이 보글거렸다.각각 아들 하나씩을 기르는 그녀들과 만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시간을 잡기도 어려웠다. 만남 전까지 수없이 많은 스케줄의 변동을 겪어야 얼굴을 ...
일본에는 야미나베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보통 암흑 냄비 정도로 번역된다.이 글의 주제가 수상쩍은 전골인 걸 보면 다들 아마 같은 것을 떠올리지 않았나 싶다.각자 재료를 가져오고 넣어서 끓인 뒤에 먹는 건데 끓이는 과정도 암전시키는 경우가 있고 먹는 과정만암전 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건 정하기 나름이지만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성악설을 지지할 수 있는 좋은 근...
나는 오늘 간단히 저녁 식사로 스튜를 만들 예정이었다. 넣으려던 생크림이 가당이었다는걸 알기 전 까지, 그건 맛있는 스튜였다. 다 만들어지고 난 후 한 입 먹은 후… “우욱.. 너무 달아.. 어쩌면 좋지?” 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스튜에서는 생크림의 단맛이 가득 났다. 당황한 나는 점점 더 이상한 것들을 넣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버릴 거, 먹을만하게 만...
사랑. 나는 여태껏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생각할 때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보고는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정작 지금 내 심장은 너무나 뜨겁게 뛰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확히 25일 전이었다. 그는 평...
“… 첫 번째 조건은, 제가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일 것,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은 거짓말이 아닐 것, 이 두 가지 뿐이랍니다.” 십여 분간의 이야기를 마치고 손님은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면 되나요?” 손님은 눈을 반짝인다. “물론이죠. 비밀에 크고 작음이 있나요. 확인 절차를 밟고 나서 문제만 없다면 2~3주 안에 제가 전화를 드립니다.” “실물이 ...
쭈뼛거리며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배알이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헛웃음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엑스엑스일보 최땡땡 기자입니다. 이렇게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으시죠.” 여자는 멋쩍게 싱긋 웃으며 자리에 앉더니 이내 어색함을 지워 버린다. “안녕하세요? ㅎㅎ 어떻게 절 찾으셨나요?”“정보원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
치열한 상상력을 1000자에 꾹꾹 담습니다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