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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만찬

By Hajin

사랑. 나는 여태껏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생각할 때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보고는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정작 지금 내 심장은 너무나 뜨겁게 뛰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확히 25일 전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내가 좋아하는 안개꽃을 사왔고, 내가 만든 저녁을 먹었고, 섹스를 두어번 쯤 했고, 그리고는 헤어지자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꺼냈다. 

"아내가 우리 관계를 알아챈 모양이야."

그리고 그 없이 흘러간 25일은, 글쎄,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언제나처럼 생글거리며 커피를 타고 복사를 하고 팩스를 보냈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차피 나는 그 정도 밖에 안되니까. 돌이켜보면 어릴 때 부터 늘 그랬다. 버림받고 상처받는 건 항상 나였다. 그것 만큼은 익숙하니까. 그러니 나는 웃으면 되니까. 웃으면서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 쯤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와의 이별의 의식을 준비하면 그만이겠지. 마지막으로 그에게 맛있는 밥 한끼만 더 먹이면 그를 완전히 내게서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긴 좀 아까운 남자이긴 했다. 조금 욕심이 났던 것 같기도 했다. 

그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나의 가슴팍을 희롱하거나 팬티 속을 더듬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곤 했다. 남자들이란 다 여자를 거칠게 정복하고 싶어한다지만 그 만큼은 예외였다. 그래서 유난히 그와의 섹스가 좋았고, 어쩌면 다른 남자들 보다 그에게 대한 마음이 더 컸을것이라 추측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추측이다. 나도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나는 도무지 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상대의 감정조차. 그저 모든게 모호한 추측뿐. 하지만 이것 만큼은 잘 알겠다. 이 남자는 곧 내가 만든 전골을 심장이 터져나갈 듯 기쁘게 먹을 것이다. 먹을 것이다. 응당 그래야만 한다.

"이제 정신 좀 들어요?" 

조금 미안하긴 하다. 너무 많이 때려버려서일까. 그가 혼절해 있던 동안 발라낸 복어의 내장과 정갈하게 썰어둔 두부를 끓어오르는 전골에 집어 넣으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여태껏 한번도 하지 않았던 한 마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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